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가 애플로부터 새로운 반도체 일감을 들고와 대만 TSMC와 격차를 좁힐 수 있을까? 

삼성전자와 TSMC가 현재 반도체 미세공정을 놓고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놓고 보면 반도체포장(패키징)기술이 애플의 수주의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반도체 패키징기술로 대만 TSMC에서 애플 일감 들고올까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2일 IT매체 하드웨어타임스에 따르면 화웨이를 대상으로 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제재가 9월 시행되면 TSMC의 올해 5나노급 반도체 고객은 애플만 남게 된다. 하드웨어타임스는 AMD 등 다른 기업의 5나노급 반도체가 올해 생산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화웨이가 이탈하면 앞으로 TSMC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애플과 화웨이는 각각 TSMC 매출의 23%, 14%가량을 차지했다.

TSMC가 애플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는 것은 달리 말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애플의 반도체를 일정 부분이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그만큼 TSMC와 시장 점유율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1분기 기준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을 보면 TSMC는 54.1%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15.9%에 그쳤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애플로부터 새로운 일감을 수주할 여지가 생겼다고 본다.

TSMC가 2016년 애플과 맺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독점공급 계약이 2020년 끝나기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를 말한다. 애플 아이폰에는 ‘A’ 시리즈가 탑재된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패키징기술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PLP)’의 이점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패키징은 회로 형성이 끝난 반도체를 탑재될 기기에 적합한 형태로 포장하는 공정을 말한다. 어떤 패키징기술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반도체의 생산성과 완제품 크기 등 여러 요소가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2015년까지만 해도 애플 AP ‘A9’를 TSMC와 함께 생산했다. 하지만 TSMC가 패키징기술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를 실용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 다음 세대 AP 물량을 빼앗긴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퍼레벨패키지란 실리콘 웨이퍼에서 개별 칩을 일일이 잘라내 포장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웨이퍼 단위로 칩을 패키지하는 것을 말한다. 웨이퍼 단위에서 일괄적으로 공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이 높다. 칩 크기에 맞게 최소화한 패키지를 하는 데도 유리하다.

FO-WLP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칩의 입출력단자를 칩 바깥으로 확장(팬아웃)해 더 많은 단자를 반도체에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고성능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칩을 잘라낸 뒤 양품만 모아 웨이퍼 형태로 배열하고 패키지하기 때문에 불량률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

삼성전자는 이런 TSMC의 패키징기술에 대항해 삼성전기와 함께 패키징 기술 FO-PLP를 개발했다. 2019년 6월에는 삼성전기 PLP사업부를 아예 인수하기도 했다.

FO-PLP는 기본적으로 FO-WLP와 비슷한 방식이지만 원형 웨이퍼 대신 사각형 패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사각형으로 만들어지는데 원형 웨이퍼에서 칩을 패키징하면 웨이퍼의 일정 부분은 버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사각형 패널은 패널 대부분을 빈틈없이 이용해 패널당 더 많은 칩을 만들면서도 재료비를 아낄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패키징기술로 대만 TSMC에서 애플 일감 들고올까

▲ 원형 웨이퍼에 패키지했을 때(왼쪽)와 사각형 패널에 패키지했을 때의 반도체 생산성을 비교한 그림. < ASE >


삼성전자에 따르면 직경 300mm 웨이퍼 기반 FO-WLP와 가로 400mm 패널 기반 FO-PLP를 비교했을 때 FO-PLP 쪽의 생산성이 2.3배가량 더 높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에 맞서기 위해 FO-PLP 기반 반도체 양산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TSMC는 2016년 FO-WLP 패키징 양산에 성공하면서 삼성전자와 양분하고 있던 AP 위탁생산 물량을 독점하게 됐다”며 “삼성전자가 TSMC와 격차를 줄이려면 늦어도 2021년에는 고사양 AP를 양산하는 데 PLP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FO-PLP의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오히려 단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일감이 필요한데 이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기는 PLP사업부를 유지할 당시 삼성전자 스마트시계 ‘갤럭시워치’용 AP 이외에 마땅한 물량을 생산하지 못해 지속해서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애플은 TSMC 최대 고객으로 꼽힐 만큼 막대한 반도체가 필요하다. 애플의 반도체를 수주하면 FO-PLP의 일감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삼성전자가 FO-PLP를 활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TSMC로부터 애플의 반도체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파운드리 가격 쪽에서 삼성전자가 불리할 여지가 있다.

파운드리사업부를 포함한 삼성전자 비메모리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2019년 기준 8~10% 수준으로 추산됐다. 반면 TSMC는 35%에 이르는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반도체 수주 과정에서 가격 경쟁이 벌어진다면 TSMC가 삼성전자보다 더 큰 폭의 할인을 단행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애플이 현재 TSMC에 국한된 반도체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다시 파운드리 파트너로 선택할 가능성도 나온다.

애플은 최근 아이폰용 올레드(OLED, 유기발광 다이오드)패널 공급사로 삼성디스플레이에 더해 LG디스플레이를 새로 선정하는 등 독점적 공급사를 배제하는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