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 왔다.”

자본주의는 현재 인간사회의 주류체제로서 뿌리를 확실하게 내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이 싸구려로 취급된다. 
 
새 책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자본주의 ‘저렴함’이 위기를 불러오다 

▲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표지.


예를 들자면 미국 사람들은 닭고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유전자가 개량된 닭이 연간 600억 마리 규모로 도살된다. 닭고기 가공공장은 시급 25센트를 받는 노동자들이 지탱한다. 이들의 86%는 질병을 앓고 있어 가족의 돌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새 책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북돋움)는 현재 인류에 닥친 기후변화와 사회 불평등 등의 위기가 자본주의와 연관돼 있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가 많은 것들을 저렴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과정에서 감춰졌던 문제들이 이제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를 쓴 저자들은 최근 600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형성된 인간 사회체계를 자본주의가 사실상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자본주의가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의 값어치를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계속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왔다고 짚고 있다. 

이 일곱 가지 ‘저렴한’ 요소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자본주의체계의 기원과 진화, 불평등이 다시 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저렴함’은 단순한 저비용이 아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생기는 위기를 일시적으로 수정하면서 자본주의와 생명 사이의 관계를 꾸려가려는 전략을 아우르는 개념을 말한다. 

저자들은 자본주의가 인간과 동·식물, 넓게는 자원 등을 아우르는 생명의 관계에 값을 매겨 생산과 소비의 순환과정에 집어넣는다고 바라본다. 더불어 생명의 관계에는 가능한 한 가장 낮은 비용이 매겨지게 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자연과 생명의 요소가 소모되면서 갈수록 가치가 커지고 있다. 생명 번식은 갈수록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극단적 불평등 문제는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난 대중시위처럼 사회적 위기로 다가온다. 금융 불안도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프런티어’로 불리는 새 이윤의 저렴한 원천을 계속 찾아 넓히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돼 왔다. 그러나 저렴한 자원과 노동으로 대표되는 프런티어가 계속 줄어들면서 이전과 같은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고 저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우리나라에도 의미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우리 역시 기후 변화와 사회적 불평등 같은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들은 지금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의 ‘저렴함’ 전략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렴함만 추구하지 말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한 뒤 그에 걸맞은 보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상을 받는 노동자뿐 아니라 자본을 지불하는 투자자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다만 저자들은 위기에 대응할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진 않는다. 대신 ‘그래서 이제 무엇을?’이라는 불편한 질문을 거듭 제기하면서 독자에게 해법을 찾기 위한 고민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는 자본주의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다. 

라즈 파텔은 세계은행과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연합(UN)을 거쳐 미국 텍사스대학 공공정책대학원 연구교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드대학 인문학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 회의에 반대하면서 열린 반세계화 운동 ‘시애틀 전투’를 조직하는 데 참여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제이슨 무어는 미국 빙엄턴대학 사회학과 교수로서 환경사와 역사지리학, 정치생태학을 가르치고 있다. ‘생명망 속 자본주의’를 비롯한 자본주의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옮긴이는 저술가이자 번역가인 백우진씨와 이경숙 빅이슈코리아 미디어사업단장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