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시대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국제유가는 변수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고 에너지업계는 바라본다. 그러나 이번 저유가는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힘이 실린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의 원유 전쟁에 저유가 오래 갈 수 있다

▲ (왼쪽부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낮은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등 3개 산유국이 벌이는 원유시장 점유율 전쟁의 결과물이며 세 나라 모두 점유율 전쟁을 장기화할 요인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원유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20달러선 상황이 이어지자 마이너스 유가를 제기하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조만간 저장시설, 터미널, 선박, 파이프라인 등 원유를 저장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의 수용력이 고갈될 것”이라며 “저장고에 넘쳐나는 원유를 처리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면서 재고 처리에 나서는 생산업체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내륙산 원유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미국 와이오밍산 원유의 가격이 3월 말 배럴당 마이너스 0.19달러로 떨어지기도 했다.

4월부터 마이너스 가격의 원유 종류(유종)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양대 산유국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까지 본격적으로 원유 증산에 나선다.

산유국들의 증산이 ‘줄어드는 파이를 누가 더 점유하느냐’는 경쟁으로 일어나는 일임을 고려한다면 원유 공급과잉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에너지시장은 점차 원유 수요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차량 운송연료로 석유 대신 전기가 주목받고 있으며 해상 연료시장에서는 선박연료유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나 액화석유가스(LPG) 등 저탄소·저황연료가 점차 강제되고 있다. 석유의 활용도는 항공유와 일반연료, 화학 원재료 정도로 축소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에너지업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증산을 두 나라의 대립구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셰일오일회사들을 원유시장에서 축출하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공동전선이라고 해석한다.

노르웨이 에너지 컨설팅기관 라이스태드에너지(Rystad Energy)에 따르면 미국 상위 50개 셰일오일회사들의 손익분기점은 국제유가 44.9달러다.

4개월 이상 셰일오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30개 이상의 유정을 보유한 회사들로 범위를 좁히면 15개 회사만이 35달러 이하에 손익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앞서 1일 미국 셰일오일회사인 파이팅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이 파산을 신청했다.

셰일오일회사들의 시장 퇴출이 현실화한 만큼 원유시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3개 나라의 구도 변화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저유가를 촉진할 눈앞의 변수는 미국의 셰일오일회사들을 향한 지원책이다.

셰일회사들의 파산이 계속된다면 이들과 연계된 채권은 종잇조각으로 전락한다. 이른바 ‘셰일채권’은 3500억 달러(430조 원가량) 규모가 발행돼 있으며 미국 고수익 채권시장의 15%에 이른다. 금융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이 걸린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만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셰일오일회사를 향한 지원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증산기조를 연장하도록 해 저유가를 장기화하는 요인이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당장의 저유가를 버틸 여력이 충분해 보인다. 두 나라의 원유 생산원가는 배럴당 20달러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에 앞서 3월 칼리드 알 다바그 아람코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우리는 배럴당 30달러에서도 아주 편안하다”며 “현재 저유가로도 투자자들과 약속한 배당금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파벨 소로킨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은 “배럴당 25달러 유가가 불만족스럽기는 해도 러시아에 재앙이 될 수준까지는 아니다”며 “러시아 국부펀드의 재력을 감안할 때 25달러 유가가 10년 이어져도 좋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채산성과 배당금 등 기타비용까지 고려한 적정 유가의 하한선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모두 배럴당 30달러선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이 추정하는 재정균형 유가(추가적 재정 지출을 요구하지 않는 적정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배럴당 83달러, 러시아가 48달러에 이른다. 20달러선의 유가는 두 나라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증산기조를 이어가려면 기본 생산능력의 증대가 필요하며 그 전까지는 전략적 비축유까지 투입해야 한다. 소로킨 차관의 ‘25달러 유가 10년’ 발언은 국부펀드의 손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에 두 나라가 제한적 감산에 합의해 국제유가를 일정 수준 끌어올리려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2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다”며 “두 나라가 하루 1천만 배럴의 원유 감산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며 감산규모가 1500만 배럴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부텍사스산 원유가 배럴당 24.66% 오른 25.32달러에, 브렌트유가 21.02% 상승한 29.94달러에 장을 마감하는 등 국제유가가 역사상 최대의 인상폭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실제로 감산을 합의할 지는 의문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글로벌 에너지시황 분석기관 오일프라이스(OilPrice)의 톰 쿨 운영책임자(HOO)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증산기조를 바꾸고 상대에게 승리를 내주길 원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이며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쿨 운영책임자는 “원유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