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석 애경그룹 총괄 부회장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결국 결정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공격적 경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애경 오너 채형석 '위기는 곧 기회', 제주항공 장고 끝 이스타항공 인수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겸 AK홀딩스 대표이사.


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채형석 부회장이 제주항공을 통해 부실한 재무구조를 지닌 이스타항공을 끝내 인수하기로 확정지은 것을 두고 재무관리를 향한 강한 자신감을 보인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당초 항공업계에서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홀딩스 사이 주식매매계약 체결 일정이 두 번이나 미뤄졌고 코로나19 사태도 겹치면서 인수 철회 가능성까지 나왔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이날 이스타홀딩스와 545억 원에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한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주식 매매계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보다 150억 원 낮아진 금액이지만 이스타항공의 부실한 재무상태와 코로나19사태까지 겹친 상황을 고려할 때 비교적 높은 금액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스타항공은 2018년 기준으로 47.9%의 자본잠식률을 보였고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라 일어난 일본여행 자제 움직임으로 업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을 것으로 항공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어려운 경영환경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강행한 배경에는 채형석 부회장의 재무관리를 향한 강한 자신감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한 것은 재무관리를 향한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큰 위험에는 큰 이익이 따른다(High risk, High return)는 생각으로 이번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제주항공이 최근 애경그룹의 재무 전문가를 제주항공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그룹 차원에서 제주항공의 재무상황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일 것”라고 바라봤다.

실제로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의 재무 전문가인 이성훈 AK홀딩스 상무를 3월 열릴 제주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준비하고 있다.

이성훈 상무는 1973년 태어나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애경유지공업으로 입사해 AK홀딩스 회계처리부 차장, 경영기획팀장, 재무팀장 등을 역임한 재무 전문가다.

이 상무는 AK홀딩스 사내이사와 제주항공 기타비상무이사를 겸직하게 된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상근으로 회사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이사회 참여 등으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채형석 부회장은 항공업계가 위기를 겪었던 과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에도 임원들에게 강한 극복 의지를 내보여 주목을 받았다.

채형석 부회장은 2015년 제주항공 고위 임원들과 회의에서 "메르스 때문에 제주항공뿐 아니라 항공업계가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이번 기회에 차별화된 서비스와 마케팅,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후발 저비용항공사(LCC)들과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 전문가들은 채형석 부회장이 코로나19 사태의 진정 뒤 정부에서 경기부양정책을 광범위하게 내놓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 제주항공을 통해 이스타항공 인수를 결정했을 것이라고 바라본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다른 전염병 사태에 비춰볼 때 회복국면에 들어서면 정부로서도 경기부양책을 내세울 것인 만큼 이번 인수를 미루게 되면 도리어 인수가격 결정에서 불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애경그룹은 시장이 어려울수록 선제적으로 판을 키우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제주항공도 이날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서 공급과잉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항공업계에 공급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이석주 제주항공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이스타항공 인수와 관련한 사내 메시지에서 “이스타항공 인수를 향한 직원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경영진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자금여력 측면에서도 다른 저비용항공사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이번 인수를 강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제주항공은 지난해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를 밝히면서 당시 현금성 자산 3천억 원 정도를 쥐고 있다고 말했고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다른 항공사와 달리 직원들에게 유급휴직을 실시할 정도로 자금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채형석 부회장으로서는 어려운 업황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절차가 마무리되면 제주항공은 국내 3위 항공사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항공기 보유 대수는 기존 45대에서 68대로 늘어나게 돼 대한항공(168대), 아시아나항공(86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아지게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