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어느 해보다 큰 변화가 예상된다.

새해에도 이어질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변화에 더욱 속도를 내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과 함께 새로운 사업과 시장에 도전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2020년 경영의 화두가 될 여러 키워드로 재계에 불어닥칠 변화의 바람을 미리 짚어 본다. <편집자 주>

[1] 신남방정책
[2] 새로운 도전
[3] 디지털 전환
[4] 스마트 금융
[5] 공기업 부채  

 
[신년기획] 현대차 동남아 진출, 정의선 일본차 아성 허물 틈 찾아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2020년 동남아시아 자동차시장 진출이라는 ‘신남방정책’의 첫 발을 내딛는다.

동남아시아는 일본 완성차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글로벌 완성차기업들도 진출을 꺼려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수석부회장은 인도네시아에 전진기지를 설립하는데 15억 달러라는 통큰 투자로 도전장을 던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동남아시아 자동차시장에 구축한 일본의 철옹성에 균열을 내는 것을 넘어 빠른 기간에 시장규모의 4분의 1을 차지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는데 이를 위한 전략도 점점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앞서 간 길을 참고해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브랜드 벤치마킹해 동남아시아 일본 철옹성 허문다

2일 증권업계와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동남아시아 진출이 성공하려면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전략형 차종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현지에 부품조달 등 생산 네트워크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토요타와 스즈키, 미쓰비시 등 일본 완성차기업들이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태국과 말레시이아 등에서 점유율 90%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배경에 생산 네트워크의 경쟁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자동차시장은 6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과 미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강했다. 하지만 일본 완성차기업들은 1970년대부터 동남아시아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점차 시장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본 브랜드들이 시장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우선 경쟁력 있는 차량 개발이었다.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좋은 연비의 소형차를 현지에서 생산함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던 일본 브랜드들은 동시에 부품의 현지화를 통해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출범에 따른 아세안 자동차시장의 최근 변화와 전망’이라는 보고서에 이러한 일본 브랜드의 생산 네트워크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일본 브랜드들은 일본 본사에서 투자정책 결정과 하이테크 부품 공급을 도맡고 태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각각 생산거점을 두고 서로 교역하는 형태로 생산 네트워크를 짜 놓았다.

태국은 완성차 조립과 디젤엔진 생산, 스탬핑 부품 등을, 필리핀은 트랜스미션(변속기)와 전륜구동 브라이브 샤프트, 클러치 등을, 인도네시아는 가솔린 엔진과 다목적차량 전용 반조립부품을, 말레이시아는 엔진 컴퓨터 등을 도맡는 구조다.

일본 브랜드들은 이렇게 각 거점별 가치사슬(밸류체인)을 통해 동남아시아 자동차시장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태국시장만 놓고 보면 일본 브랜드들은 1960년대부터 생산 네트워크를 갖추기 시작해 현재 약 400개의 1차 협력기업, 약 1700개의 2차 협력기업 등을 확보하고 있다.

유통망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의 자동차 유통기업인 아스트라인터내셔날과 인도모빌은 전체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다. 아스트라인터내셔널은 토요타와 다이하츠, 이스즈 등 일본 브랜드 전용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토요타는 1970년대부터 아스트라인터내셔날과 협력해왔는데 50년 가까이 협력관계를 이어온 덕분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국민기업’으로 인식될 만큼 브랜드 인지도를 탄탄히 다져놓고 있다.

◆ 현대차에게도 기회는 있다

이런 시장 상황만 놓고 보면 현대차그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는 듯하다.

하지만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현대차가 2019년 11월 말 인도네시아 정부와 인도네시아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맺게 된 것 자체가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현대차는 전한다.

일본 완성차기업들이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공략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 자동차시장의 규모와 성장세를 고려할 때 전진기지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정 수석부회장은 인도네시아 진출과 관련해 지난해 9월 기자들과 간담회에서도 “확실한 전략이 있으면 들어가자마자 점유율 25%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드러낸 자신감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제동반자협정 타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차가 그동안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지역에 쉽게 진출하지 못했던 이유는 ‘관세’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7년 인도네시아 현지기업인 AG그룹과 손잡고 상용차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며 2018년부터 현지 조립생산 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7.5%의 관세를 부과받고 있다는 점이 경쟁력 확보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일본 완성차기업들은 일본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30년 전에 맺은 양자경제연계협정 덕분에 대부분의 관세를 면제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신남방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타결한 경제동반자협정 덕분에 현대차에도 기회가 생겼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제동반자협정은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하게 두 나라 사이의 상품과 인력 이동 등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철강과 자동차부품, 합성수지 등 주력 수출품목에 대해 일본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조건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동차 관련 주요 품목으로는 열연강판(5%)과 냉연강판(5~15%), 도금강판(5~15%), 합성수지(5%), 자동차부품(5%) 등의 관세를 면제받는다.

아시아경제공동체에 포함된 동남아시아 6개 나라 사이에서도 무관세 교역이 이뤄진다는 점도 현대차에 기회 요인이다.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공장을 확실한 전략기지로 삼는다면 이후에도 동남아시아 자동차시장에서 일본 브랜드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의선, 인도 진출 성공의 DNA를 동남아시아에 이식한다

현대차의 동남아시장 진출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토요타와 협력하는 아스트라인터내셔날은 인도네시아 자동차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카르타에 있는 부품기업들 역시 대부분 일본 완성차기업의 협력기업”이라며 “현대차가 현지 조력자 없이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바라봤다.

결국 일본 브랜드들이 강력한 우위를 다져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 ‘현지화’와 ‘유통망 장악’이 있었듯 현대차 역시 동남아시아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이런 전략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투자 협약을 체결할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적 딜러망을 조기에 구축할 것”이라며 “2021년 말 공장 가동시점에 맞춰 고객 접근성, 지역별 수요 등을 고려해 100여 개의 딜러망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점차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에 최적화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국내 부품기업과 현지 부품기업의 기술 제휴도 추진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최소 2022년 초가 되어야 하지만 이 시기가 다가오기 이전부터 현지공략을 위한 담금질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현대차는 이미 2018년 12월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역할을 맡을 ‘아태권역본부’를 만들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이런 전략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이미 신흥국가인 인도에서 성공했던 사례를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1990년대 말, 기아차는 2019년 하반기에 인도에 진출했다. 현대차는 인도의 도로 특성과 기후, 소비자 선호도 등을 감안해 개발한 현지 전략 차종 쌍트로와 크레타 등으로 인도에서 시장 점유율 2위 지위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20년 뒤늦게 인도에 진입했지만 현지 요구에 맞는 소형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셀토스로 시장 진출 한 달 만에 SUV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재일 연구원도 “현대차의 인도시장 성공 사례는 동남아시아시장 진출의 좋은 선례”라며 “현대차는 인도 자동차시장에 초기부터 진출해 현지 공략 차종을 개발하고 판매 네트워크를 확보함으로써 인도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파악했다.

결국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성과는 인도에서처럼 진출 사전 단계부터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초기부터 시장을 잠식할 만한 전략을 충분히 추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