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도로요금 수납원 정규직 전환문제를 놓고 ‘법대로'라는 말만 반복한다.  

도로요금 수납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용역회사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불안이 계속될 것이 뻔하다며 이제 겨울 농성까지 준비하고 있다.
 
정치로 단련된 이강래, 도로공사 수납원에게 '법대로' 응대가 능사인가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28일 광화문에 있는 수납원의 농성천막에는 '투쟁 152일차,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 81일차, 광화문 농성 22일차' 라고 적혀있다. 매일 농성일자를 더해가고 있다.

이 사장과 수납원 사이 대립은 추워지는 날씨와 상관없이 뜨거운 현재진행형으로 팽팽한 평행선만 그리고 있다.  

이 사장은 2018년 8월 도로시설 관리 노동자들을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전국 각지의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이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하나의 회사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더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정규직 전환을 계기로 현재 협의를 하고 있는 다른 부문 용역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공공부문 비정규의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8월29일 대법원에서 용역업체 소속 도로요금 수납원들에게 도로공사의 직원 지위를 인정하자 그 뒤 이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해당하는 499명만 직접고용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도로공사에 정규직으로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던 1500여 명의 도로요금 수납원들은 이 사장의 발언에 분통을 터뜨렸다.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해 ‘전면적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격렬한 농성을 시작했다.

주훈 톨게이트투쟁승리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 대변인 겸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기획실장은 “도로요금 수납원들이 어려운 공채시험 경쟁을 통과한 직군처럼 화려한 신분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며 “그저 현재 하고 있는 도로요금 수납업무 등 현장업무를 하면서 그 직군에 맞는 고용안정과 노동인권 보호 등 최소한의 대우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대화의 문을 닫은 사이에 사태는 더 심각해 지고 있다. 이제는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도로요금 수납원들마저 본사인 도로공사 직원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장은 도로요금 수납원들과 대화하거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나오지 않고 있다. 7월 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하고 자회사를 통해 도로요금 수납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방침을 세워 놓은 뒤 요지부동이다.

도로요금 수납원들은 자회사 정규직이라고 하는 것은 무늬만 정규직일 뿐 용역회사 비정규직과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

애초 도로공사 정규직이었던 도로요금 수납원들이 2009년 2차례 구조조정으로 실질적으로는 도로공사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고용지위는 용역업체 비정규직으로 바뀌어 이미 회사를 향한 불신이 깔려있다.

김태영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연구원은 ‘지방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성과와 한계’의 논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단기, 중기,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승진제도와 임금체계의 차별을 해소하고 중기적으로는 모든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 장기적으로는 설립 취지에 맞는 업무 재설계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내놓은 가이드라인에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현장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강제적 내용은 없다. 공기업 사장이 해당 공기업의 사정에 맞게 본사나 자회사 직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놨다.

도로공사에서 내놓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의 근거는 서비스업무를 총괄하는 자회사로 업무와 인원을 집중시켜 관련 업무를 더 잘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납원들은 본사의 몸집이 비대해지면 높은 인건비 부담으로 실적 증가가 쉽지 않으니 자회사라는 카드를 내놓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업무와 처우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채 신분만 불안해진다고 본다.

그래서 민주노총 소속 도로요금 수납원들은 이 사장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에서도 함께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사장은 3선 의원 출신이다. 도로요금 수납원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두고 국회, 국토교통부 등 정부, 여당 등을 찾아 근본적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행보는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2020년 총선에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정치권과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말만 무성하게 나온다.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사장에게 “2020년 총선에 출마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 사장은 초대형 공공기관의 수장이다. 법과 소송의 뒤에 숨어있는 것이 능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으로서 불안한 고용지위, 용역업체 소속에 따른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연봉, 인력부족 등 열악한 근로조건을 걱정하는 도로요금 수납원들에게 다가가 설득하는 노력이 아쉽다.

단기, 중기, 장기에 걸친 정규직 전환계획과 도로공사의 사정을 투명하게 모두 펼쳐놓고 수납원들과 소통하며 토론하는 열기가 도로공사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지 않을까.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