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젠트리피케이션'과 싸우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개발과 함께 영세상인과 원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박 시장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서민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으로 보고 지방자치단체장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 재산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과 싸우는 박원순, 국가적 결단 목소리 높여

박원순 서울시장.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은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의 시행과 상생협약 체결, 상생협력 상가 조성 등을 추진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의 사회학자인 루스 글래스가 1964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 저소득층 주거지가 개량되면서 지역에 새롭게 입주하는 주민들이 중산층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상권이 뜨면 건물임대인이 임대료를 높여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영세상인과 원주민 등 건물임차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에 주로 통용된다.

박 시장은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내놓고 서울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대책은 ‘건물주-임차인-지자체’가 상생협약을 맺는 것을 중심으로 소상공인에 앵커시설 대여, ‘장기 안심상가’ 운영, 소상공인 상가 매입 지원, 법률지원단 운영, 상가임차인 보호 조례 제정, 젠트리피케이션 공론화 추진 등 7가지를 핵심내용으로 한다. 

박 시장은 서울시의 자치구 단체장과 협력하며 상생협약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동구 등 일부 자치구에서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성동구는 2019년 7월 기준 모두 178명의 건물주와 임대료 상승폭을 물가상승률 수준에 맞추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성동구에 따르면 상생협약을 체결한 상가는 임대료 인상률과 3.3㎡당 임대료, 보증금 등이 상생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가보다 낮았고 상가임차인의 평균 영업기간도 더 긴 것으로 조사됐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건물주와 상생협약 체결을 위한 전담팀을 따로 구성해 임대료 상승이 예상되는 건물주를 1:1로 맡아 설득했다”며 “상생협약 체결을 늘려 지역상권을 보호하고 기존 인구의 유출로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서울 자치구도 성동구처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현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신흥시장은 상생협약 체결에도 불구하고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려 40여 년 동안 이 곳 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대인이 상생협약을 체결했음에도 임대료를 큰 폭으로 올리는 원인은 임대인이 맺은 상생협약이 구속력 없는 ‘협약’이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방촌 신흥시장이나 경리단길의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부동산 수익률을 바라보고 투자한 사람들이 늘었다”며 “상생협약을 맺었던 건물주들이 이들에게 소유권을 넘기면서 임대료 상승폭을 제한하기로 했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 받는 것을 막을 법적 권한이 없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건물주와 '상생협약'을 통해 임대료 상승폭을 최대한 낮추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동참하는 건물주들이 일부에 그치고 협약을 체결한 건물주들도 협약을 어겨도 소액의 과태료 외에는 달리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 상승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생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협약을 맺은 건물주들이 이를 어겨도 소액의 과태료 처분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며 “서울시에는 임대료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도 서울시에 임대료 상승을 막을 권한이 없다는 점에 관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8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서울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실거주자와 상가 이용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서울시장으로서 임대료 상승을 막을 권한이 하나도 없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임대료 조정 권한을 지자체가 지니는 해외사례로 독일 베를린시를 꼽았다.

베를린시는 2020년 1월부터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의 임대인이 향후 5년 동안 기존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올릴 수 없도록 한다.

박 시장은 “베를린시의 조치는 통쾌하고 시원하다”며 “독일이라는 자유 민주주의의 아성이 높은 나라에서도 서민의 고통을 생각해 사유재산의 행사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우리는 지금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부동산이 분명히 개인 재산이기는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를 제한하는 ‘국가적 결단’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 시장이 임대료 조정의 법적 권한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국토교통부가 마련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은 법적 구속력 없는 상생협약을 장려하는 방안에 그치고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상생협약의 적극적 활용을 유도하기 위해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 공모에 젠트리피케이션 예상지역에는 사업 신청요건으로 상생계획 수립을 의무화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