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검찰에는 '1974년생 임은정'이 있다. 

검사이면서도 내부 개혁에 목소리를 높이며 검찰개혁의 최전선에서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1974년생 검사 임은정', 검찰 안에서 개혁 위한 '외로운' 싸움

▲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4일 서울시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은 임은정 부장검사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 등 전현직 검찰간부 4명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기초적 수사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이 기각했기 때문이다.

김 전 검찰총장 등은 전 부산지검 검사 윤모씨가 검사 시절 고소장 분실을 숨기기 위해 다른 고소장을 복사해 위조했다는 사실을 적발하고도 징계조치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해 직무유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임 부장검사는 이들을 4월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검찰에 부산지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이 내부 수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부터 2018년까지 검사를 대상으로 접수된 고소·고발사건 중 9903건이 검찰의 처분을 받았다. 이 가운데 기소가 이뤄진 사건은 14건에 불과했다. 

기소율을 보면 0.14%로 2014~2017년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 34.8%와 비교해 매우 낮다.

검찰은 “사건 관계인의 민원성 고소·고발이 많아 단순히 기소율을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하지만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구성원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말이 나온다.

임 부장검사는 검찰이 이처럼 내부에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특정한 정치적 쟁점이 걸린 사건에는 과도한 수사력을 투입한다고 본다. 그가 검찰개혁이 절실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기소된 직후인 9월1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검사의 공문서 위조 범죄가 경징계 사안에 불과하다며 영장을 기각하는 검찰과 사립대 교수의 사문서 위조 등 사건에 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조사 없이 기소한 검찰이 별개인가 싶어 많이 당황스럽다”며 “조 장관의 부인이라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더 독하게 수사했던 것이라면 검사의 범죄를 덮은 검찰의 조직적 비리를 두고 봐주기 수사라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 부인보다 더 독하게 수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검찰에서 이런 불공정한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도 임 부장검사가 검찰개혁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로 꼽힌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검찰청법 제7조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법이 개정되면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라졌지만 아직 검찰 내부에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뚜렷하다.

임 부장검사는 4일 현직검사로서 처음으로 경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검사가 법과 원칙이 아닌 상급자의 명령을 실천하고 관철하는 데에 질주했기 때문에 한국이 검찰공화국이 됐다”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비롯한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부장검사는 1974년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나왔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30기로 수료한 뒤 2001년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소신 있는 기소·구형과 직설적 검찰 비판으로 이름이 높다.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 관련한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상급자의 ‘백지 구형’ 지시를 거부했다. 백지 구형은 검사가 범죄를 입증하기 어려울 때 구형 없이 재판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당시 임 부장검사는 공판검사가 다른 검사로 교체되자 재판에 들어가 법정 문을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

2014년 8월에는 길거리 음란행위로 경찰조사를 받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을 놓고 법무부가 해임하지 않고 면직처분해준 것을 비판했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검찰에서 이처럼 조직의 부조리를 꼬집은 탓에 승진에 2~3차례 배제됐다. 징계를 받아 3년에 가까운 기간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임 부장검사는 이런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검찰 내부에서 개혁을 향한 선봉장을 자임하고 있다.

임 부장검사가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제발 ‘검찰공화국’의 폭주를 막아달라.”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