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토요타 렉서스에 얼마나 다가섰나

▲ 제네시스 'G90'.

‘완벽함의 추구(Pursuit of Perfection).’ 일본 자동차기업 토요타가 북미 자동차시장에서 ‘값싸고 대중적 차’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고급 브랜드 ‘렉서스’를 론칭하며 내걸었던 브랜드 철학이다.

토요타는 ‘아우토반에서 시속 200km로 달려도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차를 만들자’는 목표를 내세웠고 결국 2000년대 북미에서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를 제치는 성과를 내며 브랜드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현대자동차 역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을 열망하고 있다.

완성차기업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좋은 차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면 토요타의 렉서스가 그랬듯 현대차 역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적 안착이 매우 중요하다.

제네시스가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지 어느덧 3년 반이 지났는데 과연 제네시스는 고급 브랜드들이 성공했던 길을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 제네시스, 해외 매체 호평과 비판 공존

21일 해외 자동차 전문매체들에 따르면 제네시스가 ‘올해의 차’를 수상하거나 신차 초기품질조사(IQS)에서 1위에 오르는 등 품질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고급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는 올해 미국시장 조사기관 제이디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2년 연속으로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만 떼어놓으면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제네시스의 중형 스포츠세단 G70은 1월 ‘북미 올해의 차’에 최종 선정됐으며 각종 모터쇼와 디자인어워드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제네시스를 바라보는 해외 주류언론들의 시각은 이미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유력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30년 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때 미국인들은 ‘현대’라는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몰랐다”며 “30년이 지난 현재의 제네시스는 BMW 3시리즈의 강력한 대항마를 만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호평 덕분에 판매량도 이미 수직상승했다.

올해 미국에서 팔린 제네시스 차량은 모두 1만7대다. 2018년 상반기보다 판매량이 37.8% 급증했다. G90과 G80의 판매량은 하락했지만 지난해 말 출시한 G70이 매달 1천 대가량씩 팔리며 전체 판매량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제네시스를 구입한 고객이나 자동차 전문기자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아직 제네시스를 향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 분석 전문사이트 에드먼즈는 제네시스의 G70을 놓고 “가격 대비 기능과 기술이 풍부하며 스포티하고 재미있는 특징을 지녔다”면서도 “하지만 모회사인 현대차의 근원을 숨길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인포테인먼트 화면이 현대차와 매우 닮아있고 일부 플라스틱 마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차의 깔끔한 공간감이 만족스럽다면서도 승차감이 단단하다는 점도 부족한 지점이라고 봤다.

플래그십(기함) 세단인 G90을 놓고도 “세련된 서스펜션이 거친 도로를 부드럽게 만든다”면서도 “경쟁차량과 비교해 인테리어 재료가 특별하지 않고 반자동 기능들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물론 혹평이 제네시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드먼즈는 렉서스의 대표 하이브리드 세단 ES300h에 대해 “내부 플라스틱 재질의 품질이 몇몇 실망스럽다”며 “고급 세단 표준으로 따졌을 때 가속능력도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 “제네시스 브랜드 정체성 모호하다”

해외 자동차 전문매체들이 제네시스의 상품성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고급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들도 있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조각이 하나 빠져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고급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철학과 가치가 아직 모호하다는 것이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토요타 렉서스에 얼마나 다가섰나

▲ 제네시스 'G90'.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식에 직접 참석해 브랜드 슬로건으로 ‘인간 중심의 진보(Human centered luxury)’를 내세웠다. 모든 측면에서 혁신과 진보를 지속해 브랜드의 신기원을 열겠다는 야망을 담았다.

하지만 모든 고급 브랜드들이 혁신과 진보, 인간 중심의 철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네시스의 슬로건이 차별화되지 못한다는 점은 큰 약점으로 꼽힌다.

렉서스가 ‘완벽함의 추구’를 브랜드 철학으로 내세웠듯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모두 고유의 브랜드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고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The best or nothing)’를, BMW는 ‘운전하기에 즐거운 차(Fun car to drive)’를 브랜드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고가 아니라면 차를 만들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벤츠가 세계 최고’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BMW는 주행성능에서 다른 회사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소비자들이 개별 차량의 성능뿐 아니라 각 브랜드의 슬로건에 담긴 회사의 철학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브랜드 경영은 중요한 요소다. 고급 브랜드일수록 자동차에 담긴 고유의 철학이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재 제네시스가 보유한 라인업과 앞으로 확장할 라인업에서도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다.

제네시스는 고급 대형세단 G90, 고급 중형세단 G80, 고급 콤팩트세단 G70에다 곧 첫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인 GV80을 출시해 라인업을 확대한다. 2021년까지 쿠페 1종과 고급 콤팩트 SUV 1종을 더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2021년에 G80에 기반한 전기차 출시도 예정돼있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고급 브랜드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존 고급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 동일한 라인업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추격자’에 불과할 수 있다는 시각이 시장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 후발주자인 제네시스가 살 길은 ‘브랜드 차별화’

제네시스가 아직까지 북미에서 현대차와 판매망을 공유하는 등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현 단계에서 독자적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시급한 과제로 꼽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토요타의 렉서스와 닛산의 인피니티, 혼다의 어큐라 등은 모두 출범 초기부터 모회사의 브랜드와 독립해 고급 자동차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독립 브랜드로 태어난 만큼 그에 걸맞은 철학을 고민해 제시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토요타 렉서스에 얼마나 다가섰나

▲ 렉서스 'ES300h'.


하지만 제네시스는 이미 2008년 처음 출시된 뒤 8년 동안 현대차에 속한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된데다가 아직도 현대차에서 완전히 분리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브랜드 독립이 미뤄지고 있는 만큼 제네시스 자체의 상품성부터 키워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제네시스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위해 현대차가 제네시스의 미국 성공보다 한국에서 성공에 더욱 힘쓰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해외언론은 본다.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현대차 제네시스사업부장 부사장은 과거 한 해외언론과 인터뷰에서 “몇몇 고급 브랜드들은 안방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며 “제네시스 브랜드는 한국 출신이며 안방시장에서 성공하는 일이 우선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브랜드 철학보다는 당분간 상품성을 바탕으로 내수에 주목하겠다는 제네시스의 방침을 내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시스의 성공을 위해 브랜드의 확고한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을 더 지연해서는 안 된다고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본다.

북미 고급차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렉서스 등 기존 업계 강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제네시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브랜드 차별화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 사장은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제네시스의 브랜드 차별화 전략을 놓고 “제네시스는 럭셔리와 안전사양, 편의사양, 브랜드 이미지, 소비비용 등 전반적 부분에서 다른 고객경험과 만족도를 제공한다”며 “향후 선보일 다음 세대 제네시스 차량들은 제네시스를 다음 레벨로 올리는데 공헌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