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카드로 두 나라 사이의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꺼내드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재연장 거부 검토는 효과적 상응조치로 꼽히지만 이 협정을 섣불리 건드린다면 미국의 의사를 거스르게 된다는 부담도 만만찮다.  
 
청와대, 일본 수출규제에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으로 맞대응 신중

▲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에 대응해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파기를 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11월9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2차 실무 협의회에 참석한 일본 측 실무단이 서울 용산 국방부 본관 회의장으로 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에 상응하는 조치로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이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한다면 한국 정부가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재연장하지 않는 쪽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2016년 11월 체결된 협정으로 두 나라가 각자 보유한 2급 이하의 군사 기밀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협정은 체결된 날로부터 1년 동안 효력을 발휘한다. 효력이 끝나는 날짜의 90일 전인 8월24일까지 두 나라가 모두 연장 거부 의사를 전하지 않는다면 다음 1년 동안 자동으로 연장된다. 

일본의 제안으로 2012년 논의가 시작된 뒤 2016년 11월에 미국의 주도로 협정이 체결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비교적 소극적 태도를 보인 데다 졸속체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초계기가 2018년 말 한국 해군 함정을 대상으로 위협적 저공비행을 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 내부에서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무용론’이 들끓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강화한 근거로 한국의 미흡한 안보관리 문제를 들면서 한국 정부도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유지할 기반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5당 대표 회동에서 “지금은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유지하겠다는 쪽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현재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우리나라보다 일본 쪽에 더욱 효용성 높게 여겨지고 있다”며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이 협정이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에 관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 무역갈등에서 미국의 공조를 얻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점도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카드를 향후 상황에 따라 꺼내들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지렛대 삼아 세 국가의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략에도 이 협정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을 두 국가가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이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파기를 검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전보다 적극 관여할 여지도 커진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가 이메일 질의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대답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19일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파기하려 든다면 미국의 반대를 무릅써야 한다는 점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경제문제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협정을 파기한다면 미국의 뜻과 반대되는 행보로 비칠 수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한국과 일본 가운데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먼저 파기하는 쪽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깎인다는 점에서 상대보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한국 정부는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연계하는 데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실장이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재검토 가능성을 나타낸 점과 관련해 “야당 대표들의 의견에 원론적 차원으로 답변한 수준”이라고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도 “현재는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유지하겠다는 쪽”이라며 “효용성과 안보 협력 측면에서 (연장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