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률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면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조만간 전체 회의를 열어 내부에 제도개선전문위원회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속도 조절로 업종별 차등화 놓고 논의 불붙나

▲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 최저임금안에 관련해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도개선전문위원회는 경영계에서 설치를 요구했다. 경영계는 제도개선전문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제도의 개편안을 논의해 2021년 최저임금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부 측을 대변하는 공익위원들도 최저임금제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조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이 12일 2020년 최저임금안의 의결 직후 “최저임금위원회를 중심으로 제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개편하기 위한 위원회를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아래 제도개선전문위원회가 설치된다면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이 주요한 논의안건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업종이나 지역, 사업장 규모별로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제도개선전문위회를 조속히 가동해 최저임금의 차등화와 산정방식의 잣대 문제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한 걸음 더욱 나아가 정부가 직접 최저임금 제도를 바꾸기 위한 눈에 띄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8월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제도의 개편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강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도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차등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화와 관련된 법안도 여러 건 국회에 발의돼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최저임금의 업종과 규모별 구분 적용을 비롯해 최저임금을 둘러싼 기형적 구조의 개편을 즉각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매체 인터뷰를 통해 최저임금의 업종 또는 지역별 차등화를 주장하는 등 민주당 안에서도 차등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는 최저임금 차등화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국회 답변에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차등화가) 힘들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차등화가 대부분 현행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데다 국제협약을 어기게 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노동자 대상의 최저임금 차등화는 한국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111호와 배치된다. 이 조항은 고용과 직업상 국적을 불문하고 임금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지역별 차등화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등과 비교하면 한국은 지역 사이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고려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차등화를 검토하게 된다면 업종별 차등화부터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최저임금법 4조1항은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처음 시행된 1988년에 2개 업종별로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했던 선례도 있다.

다만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 차등화를 정식으로 검토한다면 양대 노총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는 지금도 정부의 정책적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차등화를 논의한다면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차등화를 통해 상생할 수 있다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가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