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사업의 중심축을 석유화학에서 전기차 배터리로 옮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정유업체들이 석유화학 제품 증설에 나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반면 전기차시장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학철, LG화학의 미래를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건다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10일 LG화학에 따르면 신 부회장은 2024년까지 전지본부 매출 비중을 전체 매출의 49% 수준인 31조6천억 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석유화학 사업은 2024년까지 비중을 30%대로 낮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투자도 크게 늘릴 계획이다.

LG화학은 2017년 연구개발비 1조 원, 2018년 1조 1천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19년에는 1조3천억 원으로 배터리 투자를 점차 늘리고 있다. 2018년에는 전지분야에만 연구개발비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연구인력도 올해 700명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을 세웠다. 

신 부회장은 “구체적인 투자 비중은 밝히기 어렵지만 주로 전지나 생명과학 분야에 연구 인력이 많이 투입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LG화학의 지역별 매출비중도 미국과 유럽 비중이 현재 22%지만 5년 후에는 44%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전기차 시장이 미국과 유럽에서 성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액은 110조 원에 이르는데 3세대 전기차 출시가 예정된 2020년 이후에는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 부회장이 5년 안에 LG화학의 매출 2배를 이뤄내겠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이유다.

LG화학은 올해들어 중국 빈장에 전기차 배터리 2공장을 증설하고 중국 완성차업체인 지리자동차와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중국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정부의 보조금 정책 폐지 이후 개방이 예상되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 재진입하기 위해서이다. 또 최근 볼보자동차그룹과 수조 원 대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기도 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전지사업본부 뿐만 아니라 첨단소재사업본부에서도 전기차 경량화용 소재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나 접착제 등 고부가 제품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웠다.

신 부회장은 “LG화학은 전기차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어서 토탈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며 “전기차 소재사업은 전지와 아울러 집중적으로 추진할 때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이후 첨단소재사업본부를 신설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소재사업부를 만들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한국인 최초로 글로벌 소재기업 3M 수석부회장 출신이다. 그의 내정 당시 LG화학 관계자는 "신 부회장은 글로벌 사업 운영역량은 물론이고 소재와 부품 사업 전반에 걸쳐 통찰력을 보유해 LG화학이 세계적 혁신기업으로 도약하는데 기여할 적임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신 부회장이 이처럼 전기차 중심으로 LG화학의 중심축을 옮기려는 이유는 최근 석유화학 업계의 업황 변화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정유업체들은 몇 년 전부터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에 따라 실적이 불안정한 정유사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격적으로 화학제품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있다. 기초석유화학제품부터 고부가 제품까지 생산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부문에서 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기초제품부터 폴리에틸렌, 염화비닐(PVC) 등 다운스트림 제품까지 생산해왔다. 그러나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공격적인 증설을 통해 에틸렌, 폴리에틸렌,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면서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는 정유사들과 비교해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LG화학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같은 고부가 제품 생산을 늘리고 전기차 완성차 고객사를 잡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 중심에서 전기차 시장으로 바뀌면서 정유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석유화학 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처럼 석유화학 중심으로 성장해 온 LG화학은 한 발 앞서 전기차 배터리 중심으로 기업 체질을 변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신 부회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카멜레온과 공룡 화석의 예를 들며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화석처럼 도태되기 마련이라며 환경 변화를 읽고 혁신을 통해 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신 부회장은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은 바뀌지 않는 트렌드라고 본다”며 “LG화학은 완성차 업체들과 필요한 협력을 해나가고 있으며 (사업 성장을 위한) 인적 자원과 생산능력 확보는 내부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