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점에서 한진칼의 기업지배 관행과 KCGI의 제안 가운데 그 어느 편에도 서있지 않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 것을 놓고 델타항공이 밝힌 답변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 위한 '긴장의 끈' 놓아선 안 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델타항공은 한진칼 지분 4%를 매입했다고 6월20일 밝혔다. 이를 두고 내년 3월에 열릴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하기 위해 델타항공이 지분을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KCGI는 7월1일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을 밝히라고 델타항공에게 공개 질의를 보냈다.

그 어느 편에도 서있지 않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어느 편에도 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델타항공으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은 한진그룹으로서는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델타항공이 왜 다른 동맹 항공사들에 직접 투자했던 방식과 달리 대한항공이 아닌 지주회사 한진칼에 투자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델타항공이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이 벌어질 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KCGI가 델타항공의 답변을 공개한 바로 다음날 한진칼 주가는 장 초반 5% 이상, 한진칼 우선주 주가는 20% 이상 급등했다. 델타항공이 조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을 때 한진칼 주가가 3일 만에 24.9% 급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델타항공의 답변이 전혀 상황을 바꿀만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진칼 주가가 반등했다는 것은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싼 주주들의 기대감이 여전히 높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 일가와 KCGI 사이의 경영권 다툼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부터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기 전까지 한진칼 주가는 무서운 기세로 급등했다.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 주가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라는 심리가 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각종 갑횡포(갑질)와 형사재판 등에 시달리던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기대감도 주가 급등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진그룹이 보여준 행보는 주주들의 기대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컵 갑횡포 사건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아직 조 전무 자신 때문에 진에어에게 부과된 국토교통부의 제재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한진그룹 경영에 복귀했다. 진에어 임직원들은 조 전무의 복귀가 국토교통부의 제재 해소 결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역시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고용 사건과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을 이용한 밀수 사건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았음에도 보란 듯이 한진그룹 계열사 고문으로 돌아왔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추모 사업을 복귀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가족에게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여과없이 공개돼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또 한번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조만간 복귀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찰은 6월21일 조 전 부사장을 남편 폭행과 자녀 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최근에는 대한항공이 항공기 운항 직전에 승무원에게 술을 요구한 기장은 ‘구두 경고’ 처분하고 이 사실을 신고한 사무장에게 오히려 무거운 징계인 ‘팀장 해임’ 처분을 내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토교통부는 당시 안전운항과 관련해 법을 위반한 사항이 있었는지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세계항공운송협회(IATA) 서울 총회를 잘 치러내고 집행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되는 등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조양호 전 회장의 생전부터 계속해서 한진그룹에 드리워진 후진적 지배구조는 여전히 개선돼야 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매입 직후 한진그룹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대한항공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권 안정은 주식회사를 이끌어가는 경영자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경영권 안정은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진그룹이 다시 '족벌 경영'으로 회귀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없애고 국민과 주주의 신뢰를 회복해 더 나은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KCGI 등 외부의 요구와 상관 없이 조 회장이 먼저 나서야 한다. 오너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사외이사 확대, 이사회 투명성 강화, 주주총회 전자투표제 도입 등 오너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조원태 회장이 최근 KCGI와 경영권 다툼에서 상황이 반전된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만 긴장의 끈을 놓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패착이 될 수 있다. 

KCGI는 여전히 한진그룹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고 델타항공 역시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을 향한 국민들의 눈초리도 여전히 곱지 않다.

조 회장이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배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