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거듭 전혀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감을 부추기는 ‘괴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 가짜뉴스 유포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가치를 그대로 두고 화폐의 액면단위를 낮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1000원에서 0을 지우고 1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미 커피숍 등에서 커피값 5500원을 ‘5.5’로 표현하는 등 일상생활 속에 국민들이 스스로 편의를 위해 단위를 낮춰 사용하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 10원 단위의 상품가격이 사라진지는 오래다. 국가의 자산 규모나 부채 규모, 기업의 매출 등이 점차 조 단위를 넘어 경 단위에 근접하면서 한눈에 인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화폐가 일상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한 수단인 만큼 그 단위도 경제환경 변화에 맞춰 알기 쉽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리디노미네이션의 근본적 취지다.

그런데 올해 초 문재인 정부가 조만간 리디노미네이션를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3월 국회 답변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고 말하면서부터다.

당시 이 총재의 답변은 기존 한국은행 총재들이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한 것과 똑같은 원론적 수준의 내용이었지만 이는 점차 부풀려지며 확대재생산됐다. 

이후 일부 언론을 비롯해 유튜브 등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복지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자금 양성화 목적으로 조만간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할 것이라는 말과 문재인 정부가 남한과 북한의 화폐를 단일화하기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해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한다는 말 등이 떠돌았다.

문재인 정부가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부동산 가격이 낮아졌다는 착시효과를 통해 부동산 경기를 되살리려 한다는 말도 돈다. 

그리고 이들은 말미에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대처법으로 부동산과 안전자산인 금, 미국 달러화 등을 사야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현실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뤄지려면 한국은행법 개정과 국회 동의, 새 화폐 도안 결정 및 제작, 현금입출금기(ATM) 등 화폐 관련 기기 교체 등 간단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이런 과정에 짧아도 4년, 길게는 8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터키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위한 입법 준비 과정에만 7년이 걸렸다.

리디노미네이션이 낳을 효과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논의하고 그와 관련된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돼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5년 단임제에서 이제 임기가 3년 남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안에 재정확충을 위한 수단이나 부동산 가격 활성화 등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리디노미네이션' 가짜뉴스 유포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

▲ 원화 화폐. < pixabay>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과 효과, 그에 따른 부작용 등은 미뤄두고 문재인 정부가 정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조만간 실시할 것이라는 이런 괴담들은 경제불안만 더욱 부추기고 있다.

소위 ‘리디노미네이션 관련주’가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이들 주가는 널뛰기를 했다. 5월 한국거래소 금시장에서 월 평균 거래량이 2~3배 가까이 늘어나기도 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길 바라는 이들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불만이 있는 이들, 이런 혼란 속에서 이뤄지는 거래 속에서 차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각각 ‘아전인수’격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석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원하는 이들과 문재인 정부를 흔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먹잇감’이 된 셈이다.

물론 국민들이 팍팍한 생활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향한 짙은 불신이 커진 점도 이런 괴담이 확산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총재 등 재정당국과 통화당국 수장이 잇달아 ‘리디노미네이션은 검토하지도, 추진하지도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재생산되는 이유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언젠가 이뤄져야할 국가적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대다수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5월 리디노미네이션을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도 결론은 ‘신중하게 장기간 검토할 일’이라는 데 무게가 실렸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는 계속 이어져야한다. 다만 신중하고 장기간에 걸쳐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 년 뒤, 혹은 수십 년 뒤 국민의 불편하지 않은 일상생활을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의 효과와 부작용을 모두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론화돼야 한다.

그래야 ‘가짜뉴스’를 생산해 유포함으로써 특정인 혹은 특정집단이 이익을 취하거나 그에 따른 엉뚱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