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설노조 조은석 "적정임금이 후진적 건설산업 바꾼다"

▲ 조은석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국장.

“건설노조는 건설산업의 혁신을 위해 사측과 머리를 맞댈 준비가 항상 돼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최근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앞으로 낸 호소문에서 건설 경기 침체를 타개할 근본적 해결책으로 ‘적정임금’을 제시하며 노사대화를 제안했다.

적정임금이 도입되면 건설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에 따라 공사비가 상승해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닐까, 적정임금제도가 민간공사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민간공사로 확대된다면 민간기업에 적정임금을 강제할 수 있을까 등 여러 의문이 생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17일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을 만났다.

- 우선 적정임금제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적정임금은 쉽게 말해 발주기관이 정한 임금을 의무적으로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다단계 하도급구조에 따라 아래로 내려갈수록 건설노동자의 임금이 삭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현재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공공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논의되는 적정임금제도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우세임금(PW)제도’에서 따온 것이다. 우세임금제도는 세금이 투입된 공공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에게 일정 기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미국이 우세임금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뉴딜정책’이 있다. 당시 미국 건설사들은 외부에서 데려온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공공공사에 저가 입찰해 낙찰을 받았는데 이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는 지역이 오히려 임금 수준이 낮아지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공공공사가 노동자 임금 하락으로 이어진 셈인데 이런 저가 수주와 임금 하락을 막기 위해 우세임금제도가 도입됐다.“

- 건설노조는 왜 적정임금제도 도입을 주장하나.

“적정임금제도가 한국의 후진적 건설산업을 바꾸는 핵심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정임금제도는 임금의 하한선을 설정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현재 최저임금 제도가 있지만 건설노동자는 1년 중 일할 수 있는 날이 제한적이라 최저임금제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건설업은 장마, 혹한 등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특성이 있다. 건설노동자가 보통 최저임금보다 높은 일당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설노동자의 보호장치로 원도급과 하도급 아래로 내려가는 재하도급을 제한하는 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진입장벽이 낮아 고용과 해고가 반복되는 건설 노동시장에서는 언제나 임금 하방압력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임금제도처럼 아래에서 임금을 지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적정임금제도는 부가적으로 건설현장의 투명성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적정임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건설현장의 투명성, 즉 누가 무슨 일을 언제 했는지 같은 기본적 사안들이 공유돼야 한다. 이는 건설현장의 고질적 문제인 비리를 근절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 적정임금제도가 도입되면 공사비가 오르지 않나.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다시 미국의 우세임금제도 사례를 들어야 한다.

적정임금이라고 하면 공사비 증가, 적정공사비 보장 등이 연상되지만 미국에서 시행된 많은 연구들은 놀랍게도 우세임금제도에 따른 공사비 증가는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임금을 보장하는 데 왜 공사비가 늘지 않을까. 우세임금제도 시행현장에서는 업체들이 높은 임금 수준에 걸맞는 고숙련·고기능 인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고숙련·고기능 인력은 어디에서 배출될까. 이들은 미국의 우세임금제도에서 출연된 훈련기금을 통해 마련된 교육기관에서 배출된다.

미국 건설노동자가 받는 우세임금에는 기본급, 각종 수당 등과 함께 훈련기금이 들어가 있다. 훈련기금은 노동자가 받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건설기능인 양성훈련기관을 운영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배출된 고기능 인력은 다시 현장에서 고임금을 받으면서 높은 품질의 건축물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된다. 고임금-고기능-고숙련의 선순환이 공사비 인상을 막는 셈이다.”

- 적정임금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적정임금제도가 선순환의 궤도에 들어서려면 어찌됐든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고숙련 건설기능인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훈련체계가 마련돼야 하고 노동조합은 건설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적정임금제도와 관련한 장기적 안정성을 보장해 제도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 과도기에 들어가는 비용, 실제로 공사비가 오를 수도 있고 교육훈련에 들어가는 비용도 있을 수 있는데 제도 초기 그런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각 이해당사자 사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건설노조가 성명서를 통해 노사가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자고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적정임금이 공공공사를 넘어 민간공사까지 확장될 수 있나.

“현재는 공공공사에 전면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아직 공공공사의 전면 도입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간공사로 확장할 수 있을지를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적정임금이 공공공사에 전면 도입되면 민간공사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민간공사나 공공공사나 같은 건설노동자가 하는 일이다. 공공공사의 임금단가가 올라가면 민간공사의 임금단가도 따라서 올라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교육훈련체계가 완성되면 민간공사에서도 높은 숙련도와 생산성에 걸맞은 적정임금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게 될 것이다.”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1979년 태어나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에서 국제연대 담당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해 2015년부터 건설노조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