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업계가 '기호지세'의 처지에 놓였다. 출혈경쟁이 극을 달리고 있지만 지금 호랑이 등에서 내렸다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사장은 특히 다급하다. 이번에 신규 시내면세점을 따내 '4강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공들여 추진해온 면세점사업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면세점 등에 올라 탄 정지선, 현대백화점 시내면세점 또 따낼까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15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서울에 시내면세점 특허를 3개 더 내주기로 하면서 대기업 면세점들이 눈치싸움에 들어갔다.

특허 신청에 참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이 현대백화점면세점이다. 후발주자로 사업을 시작한지 겨우 반년이 된 데다 무역센터점 한 곳에서만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어 덩치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등 업계 빅3도 이번 기회를 가만 보고있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신라면세점이 턱밑까지 쫓아온 만큼 선두를 더 단단히 굳혀야 하고 신라면세점은 겨우 좁힌 점유율 격차를 다시 내주기 아쉬우니 롯데면세점이 뛰어들면 따라가야하기 때문이다. 신세계면세점 역시 3강체제를 유지하려면 혼자 뒤쳐질 수 없다.

면세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 곳이 나서면 다른 곳도 안 나서고 버틸 수는 없는 형국"이라며 "게다가 당초 서울에 특허가 1~2개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됐는데 3개나 나오면서 오히려 이번이 규모를 확대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면세점업계는 롯데면세점이 점유율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롯데면세점이 37.8%, 신라면세점 31.1%, 신세계면세점이 17.9%로 파이를 나눠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시장의 86.8%를 독점하는 셈이다.

만약 이번에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시내면세점을 확보하지 못하게되면 빅3의 이런 과점체제가 굳어져 사업 성장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면세점사업은 규모의 싸움인 만큼 점유율에서 밀리면 명품과 화장품 등 입점 브랜드에 관한 바잉파워(구매 협상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회장은 면세점 추가 확보에 각오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는 면세점사업을 현대백화점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원래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서 열린 현대백화점면세점 개장식에는 직접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현대백화점그룹이 면세점사업에 투자한 돈만 2300억 원이다.

물론 이번 입찰을 두고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면세점사업은 매출이 늘어도 중국 '따이공(보따리상)' 유치에 들어가는 송객수수료 때문에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시내면세점이 쓴 송객수수료는 1조2767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보였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현대백화점면세점이 추가로 특허를 발급받으면 규모의 경제 달성에 따른 매입 단가 하락과 명품 유치력 상승에 긍정적"이라면서도 "경쟁 심화에 따른 손익 부담이 심화될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백화점그룹은 지금의 손해는 사업 성장 과정에서의 예정된 적자라는 뜻을 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하루 매출이 1월 13억 원에서 4월 19억 원으로 증가하는 등 빠르게 성장 중이다. 다만 1분기에 236억 원을 손해보면서 시장이 추측했던 수준인 200억 원을 훌쩍 웃돌았다. 점유율 확보를 위한 수수료 지출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인데 그만큼 회사 측의 사업확대 의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면세점이 기대만큼 잘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며 "시내면세점 특허 신청 여부는 관세청의 공고를 검토한 이후 결정할 것이고 지금으로서는 정해진 사항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