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자금 대출 제재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금융위가 금감원에서 결정한 사안을 이례적으로 다시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을 두고 두 기관사이에 또 다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대출 제재 놓고 금융위 금감원 또 갈등

▲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13일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자금 대출 제재안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상당한 수준의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8일 금감원의 제재안에 보류결정을 내리면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위원들이 추가 자료를 요청했고 추후 논의를 위해 보류했다”고 밝혔다.

증권선물위원회가 금감원의 결정사항에 법리 해석을 넘어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결정 과정을 들여다보겠다고 한 것은 흔치 않은 상황으로 금감원의 결정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사실관계 확인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금감원이 조사한 내용을 다시 보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금감원의 조사와 별도로 사안을 다시 살펴보고 결론을 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으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한국투자증권의 제재와 관련해 금융위의 의사를 적극 반영한 결정을 내렸음에도 이를 다시 들여다 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당초 한국투자증권에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예고했음에도 4월3일 기관경고, 과태료, 과징금 등 경징계를 결정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3월5일 한국투자증권 제재안을 놓고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리자 금감원이 일단 물러섰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석했음에도 비록 경징계이긴 하지만 징계를 강행한 금감원의 조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금융위의 이례적 움직임을 놓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금감원 때문에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에 금감원 제재 결정과 관련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건으로 부딪힌 적이 있다. 이 때 시작된 갈등이 단초가 돼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에는 지금도 불편한 기류가 형성되어 있다.

당시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 분식회계를 했다고 보고 중징계 내용이 담긴 징계안을 사전통보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금감원의 사전통보에 불쾌감을 내보이며 재감리를 요구했으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증권선물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금감원에 재감리 '명령'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내렸고 금감원은 재감리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 결국 증권선물위원회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 분식회계를 했다는 결론을 내도록 만들었다. 

한국투자증권 제재안을 놓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이례적 수준의 자료를 요구한 것과 함께 한국투자증권의 이례적 대응도 업계의 눈길을 끈다.

한국투자증권은 태평양 등 법무법인 3곳을 통해 적극적으로 법률적 대응을 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미 경징계로 영업에 지장이 없을 만큼 제재 수위를 낮춘 상태에서 한국투자증권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며 “아예 위법성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을 노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이 적극적 대응에 나선 이면에 SK그룹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발행어음자금 대출건의 위법성 여부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해당 제재안에서 한국투자증권의 행위에 위법성이 인정되면 이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으로 모은 자금을 특수목적법인 키스아이비제16차와 TRS계약을 통해 최 회장 개인에게 부당하게 대출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에 더해 키스아이비제16차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19.4%의 실소유자가 최 회장이라는 근거에도 힘이 실리게 된다.

키스아이비제16차가 보유한 지분이 최 회장의 소유로 인정되면 SK실트론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 회장은 한국투자증권 외에도 삼성증권 등과 특수목적법인, TRS계약을 이용해 SK실트론 지분을 10%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 그룹에서 총수일가의 지분이 비상장회사 전체지분의 20%를 초과하면 일감 몰아주기의 규제대상이 된다. SK실트론은 현재 비상장 회사다.

SK실트론은 2018년에 전체 매출 가운데 29%에 이르는 3935억 원을 내부거래로 거뒀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