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가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을까?

SK이노베이션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진입장벽을 높게 구축한 중국 전기차 배터리회사들의 아성을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다.
 
SK이노베이션, 전기차배터리 만리장성 넘기 위해 현지협력 구축

▲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5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현지에 완제품 생산공장을 짓는 것 뿐 아니라 현지 회사를 통해 소재까지 조달하는 협업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지주사 SK가 중국 동박회사 왓슨의 2대주주에 오른 만큼 SK이노베이션은 음극재 소재인 동박을 놓고 현지조달을 저울질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일 중국 리튬 생산회사인 텐치리튬으로부터 2024년까지 수산화리튬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합작을 통해 창저우에 짓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공장 근처에 2018년 10월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분리막)공장도 함께 짓고 있다.

수산화리튬은 양극재의 재료, 동박은 음극재의 소재, 분리막은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하는 소재다.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필수 소재들이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중국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놓고 말을 아끼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기존에 추진하던 전략을 더욱 힘 있게 추진하며 미래를 준비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시장의 판도가 SK이노베이션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2020년 전기차 보조금을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뜻을 내놓고 있다.

보조금이 자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지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런 정책 변화는 정부 차원에서 막고 있던 외국산 배터리회사의 진입장벽을 허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현지 ‘공룡기업’들이 이미 진입장벽을 높게 세웠다.

3일 배터리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가 2019년 1월~2월 전기차 배터리의 누적 사용량 순위를 발표했는데 CATL이 점유율 26.4%, BYD가 점유율 16%로 세계 1,2위를 차지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93.9%, 573.5%씩 성장했다.

중국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을 근거로 단순 계산하면 두 회사의 글로벌 점유율 42.4%는 중국 시장의 80% 가량을 점유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1.7% 점유율을 보여 최초로 10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회사들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SK이노베이션은 중국시장이 개방돼도 현지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SK이노베이션, 전기차배터리 만리장성 넘기 위해 현지협력 구축

▲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 생산설비. < SK이노베이션 >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SK이노베이션이 기술력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중국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는 환경아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26일 보조금 지급기준이 강화된 새 전기차 정책을 발표했다.

최소 주행거리 제한이 150킬로미터에서 250킬로미터로 높아졌고 전기차가 탑재한 배터리의 에너지밀도 최소 요구치도 킬로그램당 105와트시에서 125와트시로 상향됐다.

새 기준을 맞추려면 중국 소규모 회사들이 만드는 인산철 배터리가 아니라 더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삼원계 배터리(NCM, 음극재를 니켈, 코발트, 망간으로 만드는 배터리), 그것도 니켈, 코발트, 망간의 비율이 6:2:2(NCM622) 이상인 하이니켈 배터리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바라본다.

삼원계 배터리의 효율은 니켈 함량이 결정한다. SK이노베이션은 NCM622를 넘어 NCM712 배터리도 양산하고 있으며 2023년 이후에나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NCM811 배터리의 양산기술과 설비를 확보해 놓고 있다.

중국 회사들의 기술 현황을 살펴보면 CATL과 BYD가 NCM622 배터리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뿐 양산은 NCM523 배터리에 집중됐다. SK이노베이션이 우월한 기술을 바탕으로 두 회사가 세운 진입장벽을 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닌 셈이다.

중국 완성차회사는 물론 외국계 완성차회사들도 정부가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동안 배터리를 공급받아온 현지회사들 대신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전기차와 관련한 보조금을 줄여나가기로 하면서 중국 전기차 생태계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는 한국 배터리회사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한 차례 중국시장 진입에 실패한 과거가 있다. 이 때문에 기술력만 믿는 것이 아니라 협업전략까지 추진하며 만리장성을 넘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를 탑재한 벤츠 전기차가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대상으로 형식승인을 통과했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이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형식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첫 한국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는 최종 보조금 승인목록인 ‘화이트리스트’에 오르지는 못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