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을 서두르고 있다. SK텔레콤이 또 다른 케이블TV 회사의 인수합병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SK텔레콤이 28일 공정위에 '임의적 사전심사' 요청서를 제출함에 따라 신고 자체를 앞당긴 만큼 만약 긍정적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면 최종 승인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 뒤 추가 인수합병 나서나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기업결합을 원하는 두 회사는 계약을 체결한 뒤 '정식심사' 요청서를 제출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업무협약만 맺어놓은 상태에서 공정위에 임의적 사전심사서를 제출했다.

SK텔레콤이 임의적 사전심사를 통과하게 된다면 정식심사에서 ‘간이심사대상’이 되기 때문에 본 계약이 체결된 뒤 거쳐야 하는 정식 신고절차는 신속하고 간단하게 처리된다. 

SK텔레콤이 이렇게 스스로 서둘러 시험대에 오르면서 정부 심사의 불확실성을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려는 이유는 추가 인수합병을 타진하기 위함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은 “한국의 미디어시장은 반도체시장과 같은 잠재력을 지닌 중요한 사업이고 미래 먹거리가 분명하다”며 SK텔레콤의 미디어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미디어회사가 오리지날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규모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 사장은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티브로드 합병의 이유를 자체 오리지날 콘텐츠 제작을 위한 가입자 확보 측면이라고 밝혔는데 그 규모를 800만~1천만 명으로 바라본다.

SK브로드밴드의 IPTV 가입자와 티브로드의 케이블TV 가입자를 합하면 769만 명(지난해 상반기 기준)이 된다. 이는 박 사장이 제시한 최소한의 가입자 규모에 근접한 것인 만큼 추가 인수합병에 욕심을 낼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싣는다. 

특히 업계는 15일 SK텔레콤이 합병을 발표했을 때부터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이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이뤄져 SK텔레콤이 실탄을 아끼게 됐다는 데 주목해 추가 인수합병 가능성을 점쳤다.

SK텔레콤은 사모펀드 ‘IMMPE 컨소시엄’의 티브로드 지분과 태광그룹 오너가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태광산업이 IMMPE 컨소시엄의 지분 20.13%를 포함해 지분 100%를 SK브로드밴드에 넘기면 향후 통합법인의 지분 가운데 일부를 태광산업에 넘긴다는 것이다. 

IMMPE 컨소시엄이 지난해부터 태광산업에 투자금 회수를 위한 지분 매입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SK텔레콤이 그 정도는 부담해야 할 수 있지만 티브로드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보다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현재 SK텔레콤의 추가 인수합병 대상으로는 딜라이브나 CME, 현대HCN 등 케이블TV 회사들이 떠오르고 있다.

딜라이브는 KT와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에 이어 유료방송시장에서 네 번째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올해 7월까지 4천억 원 규모의 차입금을 채권단에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상반기까지는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여있다.

원래 KT가 지난해부터 딜라이브 인수를 타진해왔으나 국회의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라 현재 발이 묶여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한 사업자가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을 33.3%를 넘기지 못하게 규제하는 데 다시 도입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KT의 딜라이브 인수는 불가능해진다.

SK텔레콤이 티브로드에 이어 딜라이브까지 인수하면 가입자가 968만 명에 이르게 되면서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KT(986만 명)를 턱밑까지 쫓아가게 된다. 

실제로 전용주 딜라이브 대표이사는 최근 “KT 뿐 아니라 SK텔레콤 역시 채권단 쪽으로 관심을 표명했고 (인수 검토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딜라이브가 인수자를 골라 선택할 처지는 아니지만 장기적 계획을 위해 빠른 결론이 나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이 현대HCN과 접촉했다는 말도 나돈다. 현대HCN은 가입자가 133만 명 수준으로 디지털 전환율이 90%에 이르는 등 인수 후 사업 시너지도 크다. 

규제당국이 유료방송 인수합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라는 점도 SK텔레콤이 추가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14일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료방송)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의 관점이 변화했다면 공정위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3년 전 공정위가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불허한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뜻을 보였다. 

방통위도 유료방송 인수합병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효성 방통위 위원장은 7일 업무보고 브리핑 자리에서 “건전한 경쟁 속에서 사업자끼리 인수합병 논의가 이뤄진다면 방통위는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나라도 인수합병을 통한 미디어시장의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 심사기간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위원장은 독일에서 "3년 전 기업결합 심사에 오랜 시간이 걸려 기업 리스크가 커졌다"는 기자의 지적에 “이번에는 가능한 빨리 판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딜라이브 실사 등 다양한 케이블TV업체와 접촉(컨택)하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며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추가 인수합병을 놓고 아직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